시작과 끝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내가 아는 사람들 중 특히 30세 이상의 기혼자들은 '지구', '우주', 환경', '미래' 등과 관련한 이야기를 할라치면 대부분 "먹고 살기도 바쁜데 무슨 그런 얘기를 하고 있느냐" 라던가, "황당한 이야기 그만 두라"는 식의 반응을 보인다. 자신이 어떻게 숨을 쉬고 있는지조차 관심이 없을 만큼 먹고 살기 바쁜 사람들에게 그 이상의 진지한 주제를 가지고 논의하려는 시도 자체가 이미 어리석은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매사의 중심이 “먹고 사는 데”에 편중되어있는 사람들도 지진, 태풍, 화산 폭발, 가뭄, 홍수 등의 자연재해를 직접 겪게 되면 자신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 “먹고 살아갈 수 있는 환경”임을 깨닫게 될 것은 자명하다.

알려져 있다시피, 지구가 생성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45억 년 전의 일이다. 인류가 지구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불과 170만년 밖에 되지 않는다. 인간이 지구 환경에서 살기 위해 가장 필수적인 조건은 다름 아닌 기압이다. 우리는 산소가 있으면 무조건 숨을 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인간은 어느 정도의 기압에 이르지 않으면 100%의 산소 속에 있어도 호흡할 수 없다. 호흡이란 것은 산소가 폐 속에 있는 폐포막을 통과해 혈액 안에 용해되는 현상을 일컫는다. 산소에 압력이 가해지지 않으면 산소는 폐포막을 통과할 수 없는 것이다.

대기의 20%는 산소다. 그러나 고도가 높아짐에 따라 공기의 밀도는 감소하며 그만큼 산소의 절대량은 낮아진다. 혹자는 이 때문에 히말라야나 티베트 같은 고지대에서 인간이 산소 부족 현상을 일으킨다고 생각할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사실은 그와 다르다. 그것은 오로지 기압 저하로 인해 체내에 흡수되는 산소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고지대에서 버너의 화력이 줄어드는 이유도 같은 이치에서다.

대기가 담당하고 있는 기능은 기압과 산소의 공급만이 아니다. 열의 평준화 작용도 지구상의 생명체에게 필수 불가결한 기능이다. 인간을 비롯한 모든 지구 생명체에게 우주 공간 자체는 너무 차갑고, 태양 복사열은 너무 뜨겁다. 인체가 이것들에 직접 노출되면 즉사한다. 만약 대기가 없으면 낮은 불타는 지옥이 되고 밤은 얼어붙는 지옥이 되어 생명체가 일체 살 수 없게 된다. 대기가 없는 달이 실제로 그렇다. 달 표면 온도는 태양이 직접 반사되는 부분은 최고 130도까지 올라가지만, 반대쪽의 그늘진 부분은 최저 영하 140도까지 내려간다. 이에 비해 지구는 낮엔 대기가 열을 흡수해 태양의 복사열이 완화되고, 밤에는 대기의 보온 효과로 인해 우주 공간의 추위로부터 보호된다. 이 때문에 지구상에서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강한 자외선을 받으면 생물은 예외 없이 죽는다. 세포의 핵산이 파괴되기 때문이다. 자외선 중 거의 대부분이 대기 상층부 오존에 의해 흡수되기 때문에 지표에 도달하는 것은 극히 일부분이다. 소량의 자외선에 노출만 되어도 인간은 가벼운 화상을 입는다(여름철 일광욕에 의해 그을린 피부는 가벼운 화상을 입은 것을 의미한다). 그 정도로 자외선은 생명에 위험한 것이다.

태양은 지구상의 생물들에게 있어 천혜의 신이고, 그 덕분에 모든 생명이 존속할 수 있다고 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자외선의 예를 봐도 알 수 있듯이 태양 그 자체는 생명에게 죽음의 신이기도 하다. 자외선보다 더 무서운 것이 태양풍이다. 이것은 태양에서 불어나오는 플라스마 류(높은 에너지의 소립자 흐름)로서 초속 500km, 온도 10만˚C이다. 태양은 그야말로 거대한 핵융합로인데, 방사선 차폐 장치가 없기 때문에 융합로에서 플라스마가 뿜어져 나오는 것이다. 이런 태양풍을 지구 자장이 반사하고 있기 때문에 지표에는 그것이 도달하지 않는다.

어쨌든 그 자체로서는 생명에 대해 죽음의 신인 태양을 천혜의 신으로 바꾸는 것이 지구 환경이다. 죽음의 공간인 우주 공간을 생명의 공간으로 바꾸는 것도 물론 지구 환경이다. 그 지구 환경의 주역을 맡고 있는 것이 대기와 물이다. 대기는 지구를 20km의 두께로 덮어 보호하고 있다(실제로 그 상층에도 아주 희박한 대기가 있다). 20km라면 엄청난 두께이긴 하지만 지구의 크기에 비교하면 아주 얇은 막과 같은 것이다. 지구의 직경은 13,000km이다. 이것을 1,000만 분의 1로 축소해 보면 운동회 때 공굴리기에 쓰는 큰 공 정도의 크기가 된다. 그 위에 두께 2mm의 막을 붙이면 그것이 대기층인 셈이다.

물 부분은 그것보다 더 얇다. 지구상의 물을 전부 모아 이것을 균등한 두께로 만들어 지구 전체에 펼치면 불과 1.6km의 두께밖에 되지 않는다. 지구를 큰 공 크기로 축소하면 불과 0.16mm의 극히 얇은 막이 된다. 이 두 가지의 얇은 막 사이에 지구상의 모든 생명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우주 공간을 다녀온 소련의 유리 가가린Yuri Gagarin은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 본 첫 느낌을 “지구는 푸르다”라고 대답했다. 천체로서 지구의 아름다움은 우리들도 사진으로 보아 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주 비행사들은 사진만으로는 그 아름다움을 절대로 알 수 없다고 말한다.

그건 그렇다손 치고, 지구를 푸른 별로 만드는데 일조하는 것도 대기와 물이다. 물은 원래 파랗게 보이는 것이고, 대기가 파랗게 보이는 것은 대기가 청색 파장의 빛을 산란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상에서 맑은 하늘을 쳐다보면 파랗게 보이는 것같이 우주 공간에서 지구를 쳐다봐도 대기권이 파랗게 보이는 것이다. 즉 지구의 푸르름이란 수권水圈과 대기권으로 구성된 생명권이 갖는 푸르름이다.

우주 비행사들이 지구의 아름다움을 너무나 강렬하게 느낀 것은 지구가 외형상 아름답다는 것뿐만 아니라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부분에 자신이 소속된 생명권이 있다는 무의식 속의 인식이 크게 작용한 것 같다.   -<우주로부터의 귀환 /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중에서 / 청어람미디어-

정월 초하루가 지난 지 며칠 되지도 않아 느닷없이 지구 환경이 어떻고 대기와 물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먹고 살기도 바쁜 사람들에게 좋은 소리를 듣지는 못할 것 같다. 그러나 먹고 살기가 바쁘고 힘들다는 이유로 범법자를 대통령으로 선출하는데 직간접으로 일조했거나, 좋든 싫던 선출되도록 방치한 우리는 분명 그에 합당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동안 먹고 살기 바쁘다는 이유로 지구 생태계의 유지를 위해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대기와 물을 오염시키고 훼손시키는 데 일조한 우리 인류는 알지 못할 어떤 시점에 지금까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엄청난 재앙을 겪게 될 것이며, 그 때에 이르러서야 때늦은 후회를 하게 될 것이다.

모든 일에는 시작과 끝이 있으므로.......


08-01-전북 부안군-Nikon F5, AF Nikkor 35-70mm/f2.8D w/Kodak E100 VS.










prev 1 ··· 42 43 44 45 46 47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