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산별곡 - 6. 강원도 춘천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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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 29일 6시 내고향 '강산별곡'에선 춘천시 동면의 '육지 속의 섬'이라 불리는, 품걸리에서 만난 아름다운 분들의 이야기가  방영되었습니다. 제가 현재 살고 있는 곳이 춘천이지만 품걸리를 가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고, 또한 그렇게 오지인 줄은 미처 알지 못했더랬습니다. 품걸리는 여느 소양호 인근의 마을처럼 소양호가 생기면서 물길로 고립된 곳입니다. 품걸 1리와 2리 두 곳에서 VCR 촬영을 진행했는데 두 곳의 거리가 그리 멀지는 않지만 워낙에 오지인지라 품걸 1리는 소양호에서 배를 이용했고, 품걸 2리엔 차를 이용해 진입했습니다. 사진에 보이는 곳은 배가 처음 정박하는 산막골 정상에서 내려다 본 소양호의 아침 풍경입니다. 맑은 날 해가 떠오를 때 가면 매우 이국적인 풍광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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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에 같이 동승했던 분들의 대부분이 산막골에서 내리셨습니다. 저를 향해 계속해서 손을 흔들어주시고, 또 배가 육지에서 멀어져가는 중에도 계속해서  뒤를 돌아보시던 산골 어르신들의 따스한 마음이 제 마음을 소양호 물결 따라 흔들리게 만들었던 기억이 선명합니다. 차후에 찾아 뵐 예정이지만 어르신들 모두  안녕하시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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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은골의 유일한 주민이신 안 선생님이십니다. 인자하신 성품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는 안 선생님께선 14여 년 전에 소양호 어느 골에선가 전기 가설 공사를 하셨는데 그때 소양호의 자연 풍광에 매료되어 그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소양호와 더불어 살고 계십니다. 다음에 찾아뵐 때는 춘천막걸리 한 말 들고가서 안 선생님과 더불어 별빛과 소쩍새 울음소리를 안주 삼아 밤이 새도록 마셔볼 작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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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 곳에 홀로 내리신 어르신 역시 한 자리에서 한참이나 모자를 흔들어주셨습니다. 그 모습을 사진에 담으며 마치 절해고도에 어르신 한 분을 남겨두고 떠나가는 듯한 심정이 들어 어르신이 한 점이 될 때까지 계속해서 쳐다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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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양댐이 완공된 1973년부터 소양호에 깃들어 사는 주민들에게 발이 되어주는 배를 운항해오고 계신 강동헌 선장님이십니다. 그야말로 소양호의 산 증인이라 할 수 있는 분이시죠. 강 선장님께서 하시는 일은 배를 운항하시는 것 외에 골 마다 배가 정착하는 곳에 서있는 우편함에 우편물을 넣고 또 거두시는 일도 하고 계십니다. 배를 운항하시랴 우편물 나르시랴 무척 바쁘시겠지만 강 선장님의 얼굴에선 '여유'가 흐르는 강물처럼 묻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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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걸 1리에 배가 정박하자 우체국 집배원 복장을 하고 계신 분이 환한 미소를 지으시며 일행을 반깁니다. 20년 세월 동안 매일 오후 배에 실려오는 우편물 배달을 하고 계신 김호성 님이십니다. 잘생긴 한우도 몇 마리 키우시고 농사도 지으시지만 오후엔 어김없이 우편 배달을 하시느라 해가 진 뒤에도 컴컴한 산길을 다니시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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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품걸리 선착장 주변엔 매꽃이 한창입니다. 낡은 나무 보트 한 척이 돌무더기 위에 비스듬히 몸을 부려놓은 채 졸고 있는 풍경을 보고 있자니 문득 소풍 온 듯한 느낌이 들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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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장되지 않은 길은 그야말로 정직했습니다. 길을 걷는 사람의 무게가 실린 발자국과 구불구불한 바퀴 자국이 선연한 흙길을 걷는 중에 오른편으로 흐르는 작은 내는 소양호로 흘러가며 맑게 빛나는 몸을 뒤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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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여름의 손길이 닿지 않은 까닭에 하루 해는 그리 오래 버티질 못합니다. 서편으로 넘어가는 늦은 오후의 태양광은 그 손길이 닿는 곳 마다 금빛으로 물들입니다. 제 마음도 물들 것만 같았습니다. 참으로 정겹고 한가로운 저 길을 언제 다시 걸어볼 수 있을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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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파가 닿지 못하는 산간 오지인 까닭에 이동전화가 무용지물인 품걸리. 때문에 김호성 집배원이 배달하는 우편물은 그것이 무엇이고 간에 우선 반갑습니다. 밭일을 하시다말고 한달음에 달려오신 어르신의 얼굴에 꽃 보다 더 화사한 미소가 번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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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포장 임도를 따라 한참을 차로 올라 온 끝에 도착한 품걸 2리. 가리산 늘목마을 외딴 계곡에서 벌을 치며 살고 계신 박광호 어르신을 만났습니다. 어렸을 때 눈병을 앓다가 결국 두 눈의 시력을 모두 잃게 되신 박광호 어르신의 삶은 그야말로 드라마 보다 더 드라마 같은 것이었습니다. 사실 촬영 내내 저를 비롯한 모든 촬영 스탭이 박광호 어르신의 살아온 내력을 들으며 눈물을 닦아내야 했습니다. 특히 사랑하셨던 부인께서 막내를 출산하시다가 돌아가신 이후에 그 충격으로 몸을 가눌 수 조차 없었지만 남겨진 자식들 때문에 자리에 누워있을 겨를도 없던 때에 결국 이웃들의 권유로 당시 3살이었던 큰따님만 남겨두고 두 아이는 고아원에 보냈다가 사흘만에 다시 데리고 와서 홀몸으로 모두 키워내신 대목에선 모두들 울음소리를 삼키면서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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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호 어르신께선 우리나라 토종벌꿀인 한봉을 하고 계십니다. 오랜 세월동안 벌과 함께 살아오신 까닭에 날갯짓 하는 소리만 들으시고도 분봉[分蜂]을 하려는 지를 알아내시지만 직접 손으로 만지시면서 언제쯤 분봉을 시작할 것인지 가늠하시기도 합니다. 말씀하시기로는 벌에 쏘여도 아프지 않다고 하시지만 고통이란 것이 어찌 면역이 될 수 있겠는지요. 인내로써 감내해오신 박광호 어르신의 인생 여정이 제 눈앞에 그려지는 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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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박광호 어르신이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드시는가 했더니 분봉이 본격으로 시작되어 여왕벌이 대략 3m 상공으로 날아올랐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시더니 느닷없이 어디론가 내달리셔서 철제 사다리와 노끈이 달린 둥근 나무판을 가져오셔서는 언덕으로 내쳐 뛰어올라 가셨습니다. 너무나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저는 어르신께서 넘어져 다치시기라도 할까봐 연신 "어르신 조심하세요" 소리만 내지르며 뒤를 따라갔는데 제 눈앞에 경이로운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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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수많은 나무들 중 한 나무에 사다리를 걸치자말자 곧바로 나무 위로 올라가셔선 건너편 가지에 몸을 얹으신 다음 나뭇가지 한편에 모여있는 수많은 벌들을 둥근 나무판으로 옮기기 시작하셨습니다. 제가 경이롭다고 한 까닭은 두 눈이 멀쩡한 우리들 가운데 그 누구도 그곳에 벌이 모여있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숨이 막힐 듯한 시간이 흐른 다음 가지에 붙어있던 모든 벌들이 둥근 나무판 아래로 달라붙었고 이윽고 모기장으로 만든 망을 씌운 다음 위아래를 묶는 것으로 모든 작업이 끝이 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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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마 밑에 분봉을 마친 벌 주머니를 매다시는 박광호 어르신의 모습에서 온갖 삶의 난관을 온몸으로 맞서서 헤쳐나온 사람의 것이라곤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무릇 삶의 스승이란 이 같은 분을 두고 하는 말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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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마 밑에 나란히 걸린 벌 주머니는 각각 사흘이 지나면 나무통에 담겨져 꿀을 생산하게 될 것입니다. 마치 제 것인냥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 저렇게 망에 넣어서 사흘 동안 두는 까닭은 벌들이 배고프지 않으면 나무통에 넣더라도 다른 곳으로 도망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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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봉과 함께 방송 촬영도 모두 끝났을 때 어르신께서는 얼마 전에 새롭게 단장한 집의 황토빛 벽 앞에 앉으신 다음 고무신을 벗어 속을 털어내셨습니다. 빨래줄과 빨래집게 그림자가 드리워진 벽을 배경으로 아무런 제약 없이 하고 싶은 일을 하시는 어르신의 모습은 실로 아름답기 조차 했습니다. 이 때의 모습이 영 잊혀지질 않습니다.

박광호 어르신의 가감없는 인생 역정이 펼쳐진 까닭에 5월 29일 방영된 강산별곡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는 말씀을 여러분들로부터 전해 들을 수 있었습니다. 사담이지만, 그날 KBS 6시 내고향 생방송 스튜디오 연출을 담당하셨던 피디 분께서 강산별곡 VCR 화면을 보면서 눈물을 훔치시는 것을 보면서 아름다운 인생이 전하는 감동은 때와 장소를 구분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더랬습니다.

2009년 7월 22일 어제, 국민들이 원하지 않는 악법을 비합법적이고 비상식적인 방법을 동원해 강행 처리한 한나라당 무리들을 보며 인간은 두 가지 부류로 분명히 나눠진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내가 한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 감사함을 느끼게 해주는, 박광호 어르신 같은 어진 부류와 같은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사실 조차 불쾌하기 이를 데 없는, 금권에 눈이 먼 한나라당 무리 같은 부류로 나눠진다는 확신 말입니다. 이 자리를 빌어, 미디어법 철회 촉구는 물론 한나라당의 존재 자체를 강력히 반대하는 바임을 온몸으로 밝힙니다!
   

아닌게 아니라, 금수 보다 못한 무리들의 행태로 인해 불쾌하고 피폐해진 정신을 달래고자 하신다면 지난 5월 29일 방영된 강산별곡을 다시보기 하시길 진정으로 권해드리고 싶지만 아쉽게도 현재 다시보기에서 5월 29일 자 방송은 누락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그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정말 아쉽습니다.    

내일 6시 내고향은 삼척 장호항에서 현지 생방송으로 진행됩니다. 이번 강산별곡에선 강릉 대기리에서 만난 아름다운 사람들과 풍광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여전히 어색한 저의 모습을 보고자 하시는 분들께선 시간 내셔서 봐주시길 바랍니다.

잘 다녀오겠습니다, 그리고 전례 없이 긴 포스트를 끝까지 봐주시고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추가 : 생각해보니 5월 29일은 고 노무현 대통령 영결식으로 인해 6시 내고향이 결방된 날이었습니다.   때문에 이날 방영 예정이었던 강산별곡 춘천편은 6월 5일에 방영되었습니다. 다시보기를 하실 분들은 6월 5일 방송을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http://www.kbs.co.kr/1tv/sisa/sixhour/vod/vod.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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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천 / 김경범 지음 | 문학동네 펴냄
당신의 마음속 도시는 어디입니까? 아무도 들려주지 않았던, 나의 도시를 가장 아름답게 여행하는 법! 우리 도시를 사랑하는 20인의 내 마음속 도시 이야기와 팔 년간 전국을 누비며 카메라에 담아낸 임재천의...